“저는 함양에 삽니다.”“함안에 사세요?”“아니, 함양에 삽니다. 거창 옆에 있는 함양······.”“아, 함양.”대구에 사는 지인들은 내가 또박또박 ‘함양’이라고 해도 대부분 ‘함안’으로 알아들었다.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꼭 거창이라는 말을 데려와야 했다. 대체 왜 그런 것일까. 곰곰이 ..
오년 전, 가을이 시작되는 어느 날이었다. 나는 아는 이 하나 없는 함양으로 이사를 왔다. 이곳에 뿌리를 내리려면 친구가 필요했다. 친구를 찾아 나섰다. 오래된 벗이 있는 곳, 언제나 반갑게 사람을 맞아주는 곳, 바로 도서관이었다. 함양도서관은 1963년 재일본 함양군인회의 지원으로 개관하여 함양군 교육청이 ..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했다. 요즘은 그 말도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질문명의 발달로 세상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그러니 강산이 변하기까지 십년이란 시간이 필요치 않은 것이다. 함양에 자리 잡은 지 햇수로 5년이 되었다. 이사를 와서 처음 본 것은 둥근 보름달이다. 그리고 하..
홀로 산문을 넘는다. 암자에는 아무도 없다. 나와 투명한 봄 햇살과 훈훈한 바람뿐이다. 암자는 백운산 한 귀퉁이를 헐어지어졌다. 대웅전 왼쪽으로는 가파른 산자락이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계곡이 보인다. 그리 정갈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다만 마음공부하기에 좋은 터라는 생각이 든다. 물고기 한 마리..
백전면 백운리에 있는 영은사지(靈隱寺址)에 있는 돌장승* 앞이다. 영은사는 신라시대 영은조사가(靈隱祖師) 백운산 자락에 개창한 사찰이다. 구전에 의하면 19세기말 폐사된 것으로 전해진다. 지금은 옛 절집은 사라지고 돌장승 두 기와 스님들의 부도가 남았다. 석장승은 사찰 경계석과 더불어 사악한 무리..
봄비가 내렸다. 빗속에서 매화가 하얀 꽃망울을 터트렸다. 봄꽃을 피울 시기에 내리는 비, 적절할 때 내리는 비를 ‘단비’라고도 불렀다. 달달한 물, 꽃을 피우는 식물에게, 싹을 키우는 식물에게 필요한 물이었다. 비가 와서 그런지 몸이 찌뿌듯했다. 나도 단물이 마시고 싶었다. 달달한 믹스커피가 생각났..
바람이 포근하다. 마당 서있는 매화나무가 금방이라도 하얀 꽃잎을 톡, 톡, 톡 터트릴 것 같다. 봄을 시샘하는 추위가 간간히 극성을 부리지만 봄은 벌써 나의 집 마당까지 온 것이다. 정월대보름날이다. 일 년 중 제일 큰 보름달이 하늘을 밝힐 것이다. 그 시간에 맞추어 함양읍 인당교 아래 위천변에는 달..
문화재에는 여러 가지 이름이 붙는다. 국보, 보물, 사적······. 그중에서 등록문화재라는 것도 있다. 근대문화유산 가운데 보존 및 활용 가치가 높은 것을 지정, 관리하는 것이다. 개화기부터 6·25전쟁 전후의 기간에 건설·제작·형성된 건조물·시설물·문학예술작품·생활문화자산·산업·과학·기술..
힘든 일은 한꺼번에 닥쳤다. 석의 머리가 아프기 전, 미자는 독사에 물렸다. 똥 무더기인줄 알고 발로 찬 것이 화근이었다. 몇날 며칠 열이 나고 다리가 부었다. 독에 효험이 있다는 약초를 써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목숨은 건졌지만 절름발이가 되었다. 주저리주저리 아저씨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아..
안개라고 생각했던 것은 안개가 아니었다. 머리의 두통이 사라지고 대신 눈앞에 안개 같은 것이 자리 잡았다. 사물을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그나마 뿌옇게 앞이 보였다. 시력이 흐려진 것이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었다.“그래 그동안 어떻게 살았어? 형님은?”“아버지는 오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유골을 이곳..
안의면 대대리에는 거대한 자연석에 새겨진 마애여래입상이 있다. 경남 유형문화재 제333호이다. 높이 약 6m 정도에 이르는 대불(大佛)이지만 조각 수법이 매우 치졸하다. 뿐만 아니라 신체 비례라든가 윤곽선이 조화롭지 못하고 수인에 대한 이해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다만 고려시대의 불상으로 지방 장인이..
볕이 좋은날 가을바람을 쫓아 자전거를 탔다. 달리는 맛이 좋아 욕심을 내다 그만 넘어져버렸다. 일을 당했을 때는 손가락만 좀 아팠다. 며칠이 지나도 몸에는 아무 탈이 없는 듯 했다. 하지만 삼사일이 지나고 아침에 일어나니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타박상이 심했다. 타박상 때문에 황석산성에 오르려고 ..
신도비란 왕이나 고관의 무덤 앞 또는 무덤으로 가는 길목에 세워 죽은 사람의 업적을 새겨놓은 비석이다. 대개 무덤 남동쪽에 남쪽을 향하여 세운다. 조선시대 이후 정이품 이상의 관직으로 뚜렷한 업적과 학문이 뛰어나 후세의 사표(師表)가 될 만한 사람에게는 신도비를 세워 기리도록 하였다. 지곡면 평..
송호서원은 경상남도문화재자료 제209호이다. 1829년 경상도 유림들은 고은(孤隱) 이지활(李智活)의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1830년 서원을 창건하여 선생의 위패를 모셨다. 1832년에는 한남군 이어(李於)와 송계 이지번(李芝蕃)을 함께 추향하였다. 고종5년 흥선대원군의 서..
길을 걸었다. 상림 옆으로 쭉 뻗은 길이었다. 왼쪽으로는 우산을 펼쳐놓은 듯한 푸른 연잎이 살랑거렸다. 맞은편에는 노란 해바라기가 심어져 있었다. 지난 봄 붉은 양귀비가 가득했던 곳이었다. 커다란 얼굴로 해를 바라보던 꽃은 얼굴 가득 씨앗을 물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바람에 씨앗들이 여물어 갔다. 조금 ..
비가 억수같이 오는 날이었다. 극락사지 석조여래입상(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4호)을 찾아 길을 나섰다. 하늘에서 빗물이 장대같이 쏟아지니 거리는 조용했다. 차도 사람도 다니지 않았다. 극락사지는 서상면 옥산마을에 있다. 옥산천이 보이고 옥산마을로 들어가는 길이 나타났다. 그 길 따라 올라가면 석조여래..
“함양에 살면 뭐가 제일 좋니?” “글······쎄? 바람을 실컷 맞을 수 있다는 것.” 친구는 큰소리로 웃었다. 바람이 좋다는 말을 농담이라 여겼다. 그것은 농담이 아니다. 천지가 기운을 내뿜을 때, 숨을 토해낼 때 바람이 부는 것이다. 그러기에 곳곳마다 천지의 숨이 다르다. 바람의 맛이 다르다. 나는 유..
<살랑살랑 사근산성 역사 놀이터>의 다음 목적지인 연화산으로 향했다. 수동면 원평리, 그곳에는 사근산성이 있다. 사적 제152호이며 함양의 외성(外城)이라고도 불렸다. 예전에 사근역원(沙斤驛院)이 있었기 때문에 사근산성이라 이름 지어진 것이다. 사근산성은 영남지방과 호남지방을 연결하는 교통의..
6월 어느 날, 함양문화원에서 ‘같이 공유하는 함양문화재의 가치(價値)’ 사업명 아래 <살랑살랑, 사근산성 역사 놀이터> 프로그램 참가자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게 되었다. 공고를 보자마자 얼른 문화원에 전화를 걸어 참가 신청을 했다. 다양한 프로그램 진행과 점심까지 준비된 행사였다.21일 함양..
아버님 비가 요란하게 내립니다. 뇌성도 쿵꽝 거리고 번개도 번쩍거립니다. 마치 하늘에서 전쟁이 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유난히 가뭄이 심했는데 비가 내리니 고마운 일입니다. 허공은 시끄럽지만 비가 오는 날은 마음이 고요해집니다. 따뜻한 찻잔을 들고 창밖을 보니 무연히 아버님의 얼굴이 떠오릅..